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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老人)과 노목(老木)
김형태 박사(한남대학교 총장)
 
한혜림 편집기자   기사입력  2013/11/25 [15:12]
▲ 김형태 박사(한남대학교 총장)     ©편집국

 老人과 老木은 싱싱함도 없고 힘도 없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老人이 될 것이고, 모든 나무는 老木이 될 것이다.
 
 “돌떡이나 고사떡 나누어먹기, 김장이나 큰일 때 서로 돕기는 당연한 예절이었고, 집집마다 대개 노인네를 모시고 있어 노인네의 생신 때는 골목 안 노인네들을 다 청해다가 며느리, 딸들이 극진히 모시고 갖은 솜씨를 다한 음식자랑도 했었다. 그런데 우리 동네도 이젠 많이 변했다. 한옥 드문드문 양옥이 들어서게 되었고, 이웃 간에 왕래도 끊긴지 오래다.(중략) 나는 가끔 내가 돈이 한 푼도 없는 날 만원이나 오만원 쯤이 급하게 필요한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한다. 돈은커녕 광주리 하나 빌릴만한 이웃이 없다. 그래도 나는 자주 밖에 나가 사람들과 접촉하게 되고, 심심할 땐 친구들과 전화도 할 수 있고 책도 읽고 함으로써 별로 외로움을 모르고 살지만, 모시고 있는 시어머님의 경우는 이웃과의 단절 문제가 사뭇 심각하다. 심심하면 마을갔다 오마고 나가시고, 한 바퀴 돌아오시면 동네의 잡다한 소식은 다 모아들이던 어른이 요 몇 년째 가실 데가 없는 것이다. 쇠꼬챙이가 삼엄한 담장, 사나운 개, 인터폰을 통과할 일도 난감하려니와 완강하게 닫힌 사람의 마음의 문을 열일은 더욱 난관인 것이다. 앞에서 고물고물 말상대가 되어주던 손자들은 다 자라 아침 일찍 학교에 가면 늦게나 돌아와 제각기 제일이 있고 보니 할머니(할아버지)하고 오순도순 대화할 시간이 없다. 서로 왕래하던 친척의 노인네들도 대부분 별세하시고 젊은이들이 노인을 찾아뵙는 예절쯤은 생략하고 사는지 오래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원체가 80고령이라 그러신지 요새 우리 시어머님 대화에서는 많은 단어를 잊어버리고 극히 제한된 단어밖에 구사할 줄 모른다. “춥다”, “덥다” 라든가 “배고프다”, “맛있다”라든가 하는, 감각과 본능의 욕구에서 필요한 범위내로 점점 협소해지고 있다. 가끔 우뚝 솟은 이층집을 바라보면서 “저놈의 집엔 늙은이도 없나?”하시더니 요샌 그런 소리도 안하신다. 누웠다 앉았다 장독뚜껑을 열어봤다 하시며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사고(思考)의 범위까지가 구사할 수 있는 단어의 범위로 제한되는 걸까? 그렇다면 80년을 산 긴긴 사연은 뇌의 어느 깊은 주름살 속에 영영 사장되고 만 셈인가? 측은하고 서글프다. 내 남편을 낳아 주셨고 내 자식을 같이 사랑하고, 같이 병상을 보살피고, 같이 재롱에 웃던 분의 쓸쓸한 노년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저 한 가닥 연민뿐이니 그거 또한 서글프다“(박완서의 「노년」)

 늙은 느티나무 한 그루를 바라보면 오백년을 살았다는 역사를 보게 된다. 시간과 공간의 경험을 압축해 간직하면서 상하좌우로 쫙 펴져있는 나무의 수많은 크고 작은 구멍들을 바라보니 그 숱한 역사의 내용을 알 듯도 하다. “나무는 늙어도 재목으로 쓰이지만 사람은 늙어지면 아무 쓸모도 없게 된다” 그러나 프란시스 베이건은 오래된 것이 좋다고 일깨어주었다.
 
“오래 묵은 나무는 불을 붙이기에 좋고 오래 묵은 술은 마시기에 좋으며, 오래된 친구는 믿을 수 있고, 노련한 작가의 글은 읽을 만하다”(Old wood best to burn, old wine to drink, old friends to trust, and old authors to read) 나무는 한 곳에 가만히 서서도 오랜 세월을 사는데 사람은 이곳저곳 떠다니면서 별별 것을 다 찾아 먹는데도 100년 살기가 힘들다.
 
사람은 60이 넘으면 노목의 껍데기마냥 피부에도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손잔등은 거칠어지고 검은 티들이 덮이고, 얼굴엔 검은 주근깨들과 검버섯이 돋고, 어깨와 잔등에도 많은 주근깨들과 반점들이 덮인다. 그뿐인가, 저 노목은 그의 구멍 속으로 다람쥐들이 드나들어도 끄떡없고, 소슬바람에는 신비스러운 음악소리까지 내고, 해가 쪼이는 뙤약볕에는 서늘한 그늘로 덮어 줄 수도 있지만 사람은 늙어지면 왜 그러한 신비력을 가질 수 없게 태어났을까?
 
그래서 나는 다시 한 번 저 노목을 우러러본다. 시간의 흐름을 탓하고, 운명의 슬픔을 아프게 생각하는 것보다도 나는 저 노목이 아무 말도 없이 높이 서있으면서 서늘한 그늘만을 잔디 위에 덮어주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다.(한흑구의 <노목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생을 성실하게 끝마치고 草木歸根의 원리에 따라 낙엽은 땅에 떨어져 원나무의 뿌리로 돌아가는 순환의 모습을 보인다. 우리 인생도 돌아가야 한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You started out as dirt, you'll end up dirt / 창3:19) 하신 하나님의 선언을 거스를 인간은 아무도 없다.
 
뒷동산에 한 줌 흙을 보태는 것으로 우리 생애는 끝을 내야 한다. 그러니 흙으로 돌아가기 전에 더 착하게, 더 후하게, 더 아름답게 살아야겠다. 최소한 老木보다는 老人이 더 값있게 살아야 되지 않겠는가? 老木에서 딴 대추가 苗木에서 딴 대추보다 더 달다는 사실을 기억해주면 좋겠다. 결국 老人이란 현명, 지혜, 원숙도 있지만 노욕과 망령도 보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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